여기서부터 나의 고행길은 시작된다.
일단 첫 번째 내가 한 조치는 본사로 연락하여 당장 영문화 작업을 요청했고, 고객 쪽에는 '공교롭게도 현재 소프트스위치의 버전 업그레이드에 따른 영문화 작업 중이므로 조금만 기다려 달라' 했다. 그런데 이게 워낙 분량이 많은 관계로 거의 한 달이 넘게 작업을 해야 하는 분량이었다.
2주 정도가 지나자 고객 쪽에서 의심을 하며,
그전 버전이라도 먼저 주면 되는거 아니냐?
하면서 압박하기 시작했다. 거의 국제 사기꾼 정도로 몰릴 위기까지 가게 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한글 매뉴얼 파일을 들이대면서 원래는 있는데 번역할 시간이 필요하니 좀 더 기다려 달라고 해서 일주일 정도를 더 벌었고, 그 사이에 번역 업체를 계속 재촉한 끝에 가까스로 영문 매뉴얼을 받아 전달하였다.
당연 감수 같은 것은 할 시간이 없었다.
잠시 생각해보자면...
한 번은 컨설팅 차 와있던 친구 통신사업자로부터 프리랜서로 보이는 한 친구가 방문했다. 그 친구 관련 자료를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데 정말 한 천 페이지는 되어 보였다.
하고 약간 비웃듯이 물어보았더니
하면서 내 기를 완전히 죽였다.
좌우지간, 매뉴얼 전달하고 일주일 뒤에 그쪽 SI 통해서 들은 고객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제너시스템즈 9탄 : xener is]TW라는 직업은 무엇을 하나요?
였다.
나중에 들여다 보니 번역 업체는 기술을 하나도 모르는 업체였다. 게다가 우리의 자랑스런 엔지니어들은 자기들 지식 수준만 생각하고 똘똘한 한국사람들 끼리만 이해할수 있게 이야기 하듯이 글을 썼다. 주어도 없이 매 문장을 시작하기 일쑤였고 읽는 감도 안잡히는 상태에서 웬 대명사들은 그렇게 많은지… (정말 오바해서 이야기 하면 “ 뭐 거시기 하는거는 거시기 처럼 거시기 항게 거시기 하게 하면 되지라 잉” 뭐 대충 이런 식이다.) 문장 하나가 보통 6~7줄 짜리로 거의 문단 수준이었다. 대충 그런 상황이었으니 그 친구들에게서 그런말 나와도 사실 할 말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어차피 우리 바로 인스톨을 시작할테고 현장에서 보고 배우는 것이 최고니까 우리가 정말 쎈 친구들로 구성해서 파견할 테니 그 때 배우면 충분할거다 하면서 어영부영 넘겼다.
실제 구축에 필요한 세세한 항목들을 다시 조율하면서 이거 저거 다 해달라고 하는 고객 (여기는 이슬람 문화권이라 술도 안마시고 별다른 놀거리도 없어 책읽는것 하고 수다 떠는것 이외에는 별 취미가 없는 애들이라 책에 나온 전부를 다 긁어 모아 다 해달라고 했다) 하고 연일 치고 받고 얼르고 달래고 협박하고를 반복했다. 거의 300가지 기능 요청하면 3가지정도만 수용하고 나머지는 다 현실적이지 않다라고 설명하고 설득하고 협박해가면서 조율을 했다. (정말 대단한 우리 슈퍼맨 엔지니어들이었다.) 실제로 대부분은 가당치도 않은 기능들이었고 우리가 구현하기 어려운 기능들도 있었다.
두 번째로 넘어야 할 산은 그쪽에서 요구하는 계약서상의 계약이행보증(performance bond)이었다. 이것은 일종에 하자보증보험 같은 것인데 설치를 하고 나서 일년 동안 정말 잘 돌아가는지를 못 믿으므로 만약 어떠한 조건이 만족되지 못할 경우 은행으로부터 계약금액을 돌려받는 그런 보험 증서 같은 것이다. 해외계약에서 매우 통상적인 조항이다. 우리가 제일 앞단에 서있던 관계로 어떻게든 이 부분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던 것이다.
어쨌든 고객으로 부터 일단 조건부 신용장(L/C)을 받고 국내의 은행들에 문의를 해보니,
우리의 수금은 계약 후 일부, 설치 후 일부, 일년 뒤 일부 이런 식으로 찢어져 있는 상황에서 계약금액 전부에 해당되는 금액을 은행에 박아 두게 되면 당시 우리 회사의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빡빡한 자금 흐름(cash flow)이 완전히 꼬이게 되므로 우리로서는 상당히 난처한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대기업 같은 경우는 워낙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이 많기 때문에 일정 금액을 그런 용도로 거치시켜놓고 이리저리 돌리기 때문에 별문제가 없고, 그런 이유로 은행들로부터 조건들 또한 매우 좋게 받고 있다.
그래서 광화문에 있는 파키스탄 국영은행지점 찾아가고, 여의도 수출입은행 찾아가서 해결해 볼라고 살려달라고 빌고 조언 구하고 여기저기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별 짓 다 해본 것 같다ㅜ.ㅠ....
고객 또한 새로 시작하는 회사인지라 자금사정이 탄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은행에서 차입을 하여 대금을 지불하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며 신용장 또한 조건부 신용장의 형태로 그 은행으로부터 받아 보내주었는데, 국내 쪽 은행에서는 신용장이 이상하다, 이런 은행 처음 들어봤다는 둥 이 또한 안 받아주려 해서 정말 여러 가지로 상황이 어렵게 되었다.
그래서 광화문에 있는 파키스탄 국영은행지점 찾아가서 이 은행 제대로된 은행인지 확인 해달라고 하고, 여의도 수출입은행에 찾아가서 거치금 없이 PB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수 없냐고 졸라보고 조언을 구했었다. 여기저기 힘좀 쓴다는 양반들, 사장님들 쑤셔서 다 동원해 보고, 이거 해결해 볼라고 정말 내가 할수 있는 별 짓 다해본것 같다. (정말 다들 반대하는 프로젝트를 내가 우겨서 계약 했었기 때문에 자존심 상 더 그렇게 열심히 뛰어 다니고 했던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결론은 '방법이 없다'였다.
그 당시 수출입은행 주최로 중소기업들의 어려운 점을 듣고 실제적인 도움을 주겠다는 이름으로 몇몇 수출 중소기업을 초청해 1박 2일 동안의 세미나가 있었다. 운좋게 거기까지 쫓아가서 게거품 물고 정말 이딴 식으로 안 도와줄거냐며 회의 때 행패부리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건당 수천억 수조원짜리 대기업들 주로 다루는 게네들 입장에서 나는 그냥 이름 모를 어느 조그만 회사에 다니며 나름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그런 놈 정도로 보였나 보다.그렇게 두 달 넘게 방방거리고 돌아다녔지만 상황에는 전혀 진전이 없었고, 결국 경영지원과 상의한 끝에 이행보증 없이 차리리 수금을 나중에 하자는 것으로 결론 내자고 합의했다. 고객에게는 우리가 계약이행보증을 하지 않는 대신 수금을 일년 뒤에 하겠다는 조건을 걸어 설득했고 결국 관철시켰다. 하지만 앞서 받은 조건부 신용장의 기술 내용과 조건이 바뀌게 됨에 따라 나중에 수금할 때 또 일이 꼬이게 된다.
즉, 그들도 신용장을 조건부로 열었는데, 조건이 바뀌게 되었고, 대금 자체도 그 은행으로부터 차입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미 조건이 바뀌어 버린 상태에서 그 신용장은 국내 은행이 볼 때는 아무런 구속력 없는 휴지 조각에 불과했다. 결국 신용장을 다시 발행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고객은 파키스탄 은행 쪽에 그것을 변경 요청하는데 은행 쪽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해서 이를 해결 하는데 또한 만만치 않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수금을 하게 되었다.
내가 그러고 있는 와중에 우리 엔지니어들은 실제 2005년 초부터 실제 구축 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고객은 장비 넣을 건물(‘NOC’라고 불렀는데 아마도 ‘network operation center’정도 되는 것 같다)을 새로 구입해서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이건 완전히 뼈대만 있는 건물 새로 칠하고 바닥공사하고 좌우지간 먼지 풀풀 날리는 그런 상황에서 엔지니어들이 투입되었다. 우리의 슈퍼맨 엔지니어들이 느끼기에도 당시 상황이 황당 그 자체였지만 역시 슈퍼맨들은 슈퍼맨들이었다. 우선 빗자루랑 쓰레받기를 요청해 청소부터 시작했다. 한쪽에서는 페인트 칠하고 바닥 깔고 벽 세우고 있는 와중에 한쪽 구석에서 장비 설치하고 소프트스위치 깔고, 그 와중에 눈만 똘망 똘망 배우겠다는 열의로 벌떼처럼 몰려든 현지 엔지니어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을 가르쳐가면서 근 3개월 간 꼬박 피자만 죽어라 먹어가면서 설치 완료 하고 결국 런칭에 성공했다. 아마도 그 해 초 여름쯤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해 가을 또다른 위기가 닥쳐오는데,
이슬람 문화권 최대의 축제인 한달기간의 라마단 (한달동안 해떠있는 시간에는 물도 안먹는 기간)이 끝나고 일주일간 축제가 열린다. 모든 사람이 즐기는 그런 기간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기간 동안 전화통화량이 거의 폭주를 한다는것이다.
어찌되었건 이 때 통화량 폭주가 일어났고 우리 시스템이 속절없이 뻗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하고 만다.
사람마다 각자 자기 위치만큼 생각하고, 각자 역할이 따로 있는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 하나하나가 다 내 자식같은 것들이라서 그 경험들을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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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 2009/11/17 16: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볼 때마다 흥미 진진하네요 ㅋ 다음편을 기대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공대생님,
이제 마지막편으로 내용이 전개되고 있어서 제너두도 흥미진진해지고 있답니다.
항상 이 글을 주시하고 계셔주시니 감사합니다.
잘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현승아범 2009/11/19 1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이사님은 부업으로 책을 쓰셔도 될 것 같네요... 글이 너무 흥미진진 합니다..^^;;
다음편도 기대되네요...
과찬의 말씀 이십니다. 실제로 그당시 상황자체가 워낙 예기치 못한일들이 많이 일어났고 (사실 지금까지도 항상 그런와중에 살긴 합니다만 ^^) 이런 상황 자체가 주위에서 자주 접하는 상황이 아니다보니 흥미롭게 읽어주시는 것 같네여 ^^
부족한 글에 과찬을 해주셔서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ㅎㅎ
책으로 낸다면 베스트셀러에 가지 않을까요?ㅎㅎㅎ
앗!! 유이사님께서 직접 댓글을 달아주셨네요^^;
생생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반응이 좋은 듯 합니다.
언제나 감사드립니다.^^;